< “나의 특별한 형제”를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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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부관리자 작성일19-10-24 19:17 조회3,017회 댓글0건본문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까지 살아갈 책임이 있다.’ 이 문구는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살았던 시설인 ‘책임의 집’이 가진 의미이다. 이 영화는 지체장애,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두 소년이 가족으로부터 버려져 우연히 시설에서 만나 평생을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의 중반부에가면 지적장애인인 동구를 버렸던 친어머니가 찾아와 동구를 다시 데려가겠다며 지체장애인인 세하를 상대로 피성년후견인 지정 법적 소송을 진행하게 되는데 이 소송 과정에서 세하는 “당신이 이제까지 동구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 것 아니냐. 동구의 친어머니는 당신보다 경제적인 능력도 훨씬 좋고 장애인인 당신보다 동구에게 해줄 수 있는 것도 훨씬 많다. 당신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으니 지적장애인인 동구가 장애인인 당신과 사는 것과 비장애인인 가족들과 사는 것 중에서 뭐가 더 동구에게 좋은 선택인지 아실 것이다.”라는 상대 변호사의 말에 이런 말을 한다. “약한 사람들은 약한 사람들끼리 돕고 사는 거라고 배웠다. 다 가진 사람들이 왜 동구를 필요로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동구를 이용한 것이면 동구 역시 나를 이용한 것이고 내가 동구에게 도움을 받았으면 동구 또한 나에게 도움을 받은 것이라고. 우리는 이제까지 그렇게 잘 살아왔다고.” 나는 이 말에 충격을 받았다. 나 역시 이제까지 상대 변호사가 했던 말처럼 생각했었다. 장애인들끼리 살아가는 것보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같이 사는 것이 당연히 더 안전할 것이고 사회에 어울려 살아가기에도 비장애인과 함께 살며 조금이라도 챙김을 받는 것이 장애인에게도 훨씬 더 좋은 선택일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세하와 동구의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실제 최승규, 박종렬씨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단순히 영화상의 스토리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다수 존재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배운 지식과 실제 상황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무언가 실제 상황과 괴리가 있을 수 있는 저런 지식들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의문 또한 들었다. 한가지 생각난 사례는 내가 이제까지 배운 지식으로는 통합교육은 분리교육보다 월등히 좋고 될 수 있는 한 가장 추구해야하는 교육이다. 하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이 학업내용과 사회성 부분에서 도움을 받는다고 하여 성급히 실시했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일어나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이 모두 상처 입는 교육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년 기에 있는 남학생들은 아직까지 장애인이 자신의 반에 있을 때 그 장애인 아이를 비하의 대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아직 꽤 많은 장애 학생들은 교실의 학교폭력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대학교에서 많은 이론을 배우고 실제 교육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 될 지식들도 많지만, 아이들을 가르칠 때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때 진짜 우리가 배운 그대로 행해야 할지, 아니면 그 상황에 대입하여 그 지식을 적용했을 때 위의 사례들처럼 현실과의 괴리가 발생하지 않을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가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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