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달장애인 손자와 알츠하이머 할머니의 약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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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부관리자 작성일19-12-31 08:36 조회1,930회 댓글0건본문
반짝반짝 불빛들이 예쁜지 두 손을 턱에 괴고 미소 짓고 있는 배범준, 11월부터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해야 한다고 깊숙이 있는 상자들을 꺼내 조립식 나무를 세우고 주렁주렁 형형색색 방울을 달아 그럴 듯하게 장식했다. 그리고 호두까기 인형들과 즐겁게 얘기를 한다.
“안녕 반가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까 기뻐, 나도 기뻐, 우리 신나게 지내자, 나는 싼타 형이니까 아이들 만나서 선물 줄거야”
매년 산타 형이 되어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범준의 사랑 나눔)
2019년 봄은 걱정으로 시작을 했다. 매 월 바쁘게 연주를 했었는데 올해는 4월이 되도록 연주섭외가 없었다. 그러다가 잊지 못할 첫 연주를 하게 되었다. 서울대학병원의 ‘장벽 없는 병원’행사에 초대되었다.
그동안 연주하고 싶어 했던 간절함 때문인지 준비 한 곡보다 앵콜 곡이 더 많았다. 모든 연주가 끝났음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던 노부부는 뭐라도 주고 싶어서 가방 속을 뒤적였다. 사랑의 응원이었다.
피아니스트였던 어느 암 환우와 그녀의 어머니, 한참을 같이 울었다. 어떤 마음인지 서로 알기에 말보다 눈물이 앞섰다.
“빨리 나아서 나랑 같이 연주해요”
그 환우에게 말한 범준이는 KBS아침마당 출연료 전액을 서울 대학병원에 전달했다. 그 누나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배범준의 행복 나눔)
눈사람 모양의 불빛나는 작은 뱃지들을 보며 연신 물개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배범준, 아이들에게 나눠 줄 생각에 행복해 한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어떤 선물을 받을까 기다렸던 어린 범준이가 이젠 청년이 되어서 싼타 형이 되어 무슨 선물을 줄까 행복한 고민을 한다.
“엄마, 내년에는 상자선물 줄래요~”
내년에는 아이들에게 선물들을 상자에 가득 담아 주고 싶다고 한다. 아주 작은 선물인데도 기뻐해 준 아이들의 예쁜 마음이 고맙다.
(배범준의 정성어린 기부)
연주의 기회는 지난해에 비해 확연하게 줄었다. 공공기관에서 전달받은 내용은 주로 단체와 협회에게 연주 섭외를 하며 장애인 고용노동부의 장애인식개선 강사 양성과정으로 인증된 장애인들에게 기회가 확대된다고 한다.
재단이나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는 한 앞으로 기회가 더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걱정과 속상함이 밀려왔다. 10년 이상 장애인식개선을 위해 꾸준히 활동했던 발달장애인 첼리스트 배범준, 그 노력들도 분명히 수많은 장애인식개선을 위한 노력들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개인’이라는 이유로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 같았다. 아니 어미의 부족함으로 배범준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마음이 시렸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끝까지 첼로를 포기하지 않는 배범준, 초청연주비를 모아 일부를 사각지대 학생에게 기부를 한다.
연말이면 어김없이 싼타형이 되어 아이들과 즐거운 한때를 즐긴다. 그랬더니 쑥덕 쑥덕이는 소리들이 전해졌다.
“돈이 없어서 레슨을 못 받는다며? 고장 난 첼로를 바꿔 주지도 못했었다며?” 등등, 그런 형편에 무슨 기부냐며 꼴값을 떤다고 한단다.
개인에게 초청연주는 얼마나 감사한 기회인지 모른다, 그 고마움을 정작 초청해 준 담당자에게는 현물로 보답하지 못하지만 받은 사랑에 정성을 다해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첼리스트 배 범준군이 가장 바라며 행복해한다.
(2019년의 기적)
생애 첫 공모 ‘장애인 문화예술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다. 첼리스트의 역량을 향상시킬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기간 동안 만큼은 꾸준히 레슨을 받았다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다. 지도 선생님이 더 기뻐하셨던 순간이었다.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교 고등학교 선생님 그리고 대학교 지도 교수님들도 축하해 주기 위해 공연장에 오셨다. 뿐만 아니라 해외에 계신분들 조차 축하 인사와 꽃다발이 이어졌다.
공모전은 하나 더 선정되었었다.
미국 테네시에 거주하는 Eben Applton 할머님과 만나는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현지 장애인 아티스트와 즉흥 콜라보 연주는 물론 장애인 가족들과 서로 응원하는 따뜻한 만남이었다.
“첼로가 아파요”
범준이는 첼로가 고장이 날 때 첼로가 아프다고 표현한다.
그랬다. 첼로는 여전히 힘들어 했다. 제때 관리해 주지 못하고 수리도 하지 못했다. 좀 더 좋은 첼로를 사 주고 싶지만 녹녹치 않았다. 그럼에도 첼로와 평화를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은 수리비를 받지 않는 행운들 덕분이다.
강화도 평화의 섬 선포식에서 평화를 연주할 수 있었고, 잊지 않고 계속 기회를 주신 덕분에 유치원과 학교 기관에서 장애인인식개선을 위한 강연과 연주를 이어 갈 수 있었다.
(발달장애인과 대학입시)
뒤늦게 대학 입시에 도전을 했었다. 지난여름 공모전을 통해 완성했던 곡으로 응시했지만 불합격을 했다. 입시를 위한 충분한 레슨을 받지 않아서 당연한 결과임에도 안타깝고 슬펐다. 그런데 만약에 충분한 레슨을 받았어도 과연 합격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는 왜 대학 입시에 응시해야만 했을까? 첫 번째는 지속적인 교육의 기회 때문이었다. 배우고 계속 배워야 하는 중증 발달장애인 아닌가? 그래서 백석예술대학을 졸업했지만 또 다시 입시에 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중증장애인의 삶이다. 첼리스트 배 범준은 일정한 수입을 보장받는 재단이나 단체, 기관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 그곳의 단원 선발을 위한 오디션 공지는 외면하게 된다.
이유는 기존 단원이 우선이라는 소문과 실제로 결국 기존 단원이 재채용되는 과정일뿐이었다. 만약 새로운 단원이 입단하게 되면 기존 단원들 중에 누군가는 짤린다.
‘짤렸다’라는 표현은 성실하게 근무했지만 중증장애인이고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존 단원이 있는 곳의 채용공지는 거들 떠 보지 않는다. 채용공지가 법정의무사항인가?
기존 단원들은 재 채용을 위한 공지라는 것을 안는 걸까? 떨릴까?
지원자의 희망은 어쩌나?
실력이 없는 중증장애인이 어느 곳도 갈 곳 없다면? 혼자 남겨진다면?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발달장애인이다.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한 발달장애인이다.
발달장애인들이 경쟁하는 것이 싫어서, 그래서 누군가는 슬프게 되는 것이 싫어서 기존 단원들이 있음에도 추가 채용공지가 아닌 것에는 관심도 응시도 하지 않는다.
중증 발달장애인들의 부모들이 장애인 자녀 당사자들 보다 더 간절하게 가슴 조이고 있다는 것을 발달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사업, 봉사하는 모든 곳에서 모르지 않을 것이다.
성실성에 대한 결격사유가 되지 않는다면, 기존 발달장애인의 채용이 보장되길 바라며 범준군처럼 아직 직업 채용이 되지 못한 발달장애인들의 신규채용이 확대되기를 바란다.
특히 위탁사업이 기존 단원들에게 주는 혜택도 물론 좋지만 소속되어 있지 않은 개인들에게도 기회가 있기를 소망한다.
대학 입시를 뒤늦게 부랴부랴 도전하게 된 것은 이런 현실과 4년제 대학 졸업자격 조건의 지역 장애인 오케스트라 단원 모집 공지 때문이었다.
물론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발달장애인들도 있다. 배범준은 백석예술대학교(2년 전문대학교) 졸업을 했다. 콘서바토리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국장학재단의 장학금으로 대학등록금을 마련해야 하기때문에 그에 충족되는 대학에 도전해야만 했다. 편입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입시를 위한 레슨을 받은 형편이 되지 않는다. 한동안 내가 힘들고 아팠던 이유였다.
부족한 엄마로 인해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마음이 아팠고, 배범준의 행복나눔, 사랑나눔과 기부에 온갖 무성한 쑥덕거림으로 더욱 아팠다.
발달장애인이다.
지적장애인이다.
중증장애인이다.
이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청년이다.
첼리스트이다.
열정과 노력을 다한다.
평화를 연주한다.
나눔과 봉사를 한다.
이것은 배 범준이다.
사랑하는 첼로와 평화를 연주하는
중증장애인 첼리스트 배범준
그의 삶이 궁금하다.
청년에서 중년으로 그리고 노년의 아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
(발달장애인 손주와 알츠하이머 할머니)
나의 어머니는 10년째 알츠하이머를 갖고 계시다. 지난 늦가을 바다를 같이 갔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는 곁에서 챙겨주고 말벗하는 손주와 손녀를 칭찬하셨다.
“누구네 아이들인지 참 예쁘네요. 부모님들이 훌륭 하신가봐요, 아이들이 친절하고 마음씨가 고와요.” 한 번도 아니고 계속 반복해서 말씀하셔서 칭찬하시는 모습을 영상에 담을 수가 있었다. 그때 마다 범준이가 반복적으로 같은 대답을 한다.
“할머니 예뻐요
내가 기차 태워 줄게요
내가 비행기도 태워 줄게요
내가 지하철도 태워 줄게요
나도 할머니 좋아요”
그렇게 서로 칭찬하며 강원도에 갔었다.
(발달장애인 손주와 알츠하이머 할머니의 약속)
“우리 집에 가요.
우리 엄마가 맛있는 거 해 줄 거에요.
울 언니도 같이 만나요.
내 동생도 보여 줄게요.
꼭 같이 가요. 네?”
할머니의 같은 말을 반복할 때마다 범준이가 응대를 한다.
“네 할머니 집에 갈게요.
맛있는 것도 먹어요.
엄마~ 할머니랑 할머니 집에 꼭 같이 가요.”
꽃피고 새가 노래하는 따뜻한 봄날이 오면 어머니 고향에 가야 한다. 꼭 가야한다고 기억하는 발달장애인 손주와 추억 속으로 가고 싶어하는 알츠하이머 할머니의 약속이다. 강원도에서 돌아오는 내내 범준이와 어머니는 서로 칭찬했다. 같이 칭찬해서일까? 지치지도 않는다.
(2019년 그리고 2020년)
서로 응원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같이 칭찬하는 것,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 열정에 칭찬하고
좌절할 때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9년
발달장애인 첼리스트 배범준,
힘들고 좌절 할 때,
평화를 연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분 들 덕분에 행복하고 감사한 해 였다.
그 감사함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하고 기쁜 한 해 였다.
2020년
더 칭찬하고
더 많이 평화를 연주하며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행복한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
#출처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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