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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이야기

< 장애청년 예술가들이 품은 '사과'를 만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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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부관리자 작성일19-11-28 13:38 조회2,7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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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예술판 '꿈틔움 예술창작소 작품발표회' 현장

"느리지만 천천히, 포기하지 않고 걸어 나아갈 것"

“한 개의 사과 안에 몇 개의 씨앗이 들어있는지는 알 수 있지만, 한 개의 씨앗 안에 몇 개의 사과가 들어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 꿈틔움 예술창작소 작품발표회 박장용 총연출

그의 말대로,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장애청년들이 얼마나 많은 사과를 가졌는지, 어떤 사과가 들어있는지. 그래서 칼바람에 몸을 움츠린 사람들을 지나 그들을 찾아갔다.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만난 장애인 예술가들의 목소리와 움직임은 씨앗이 천천히 움트는 봄을 미리 느끼게 했다. 그들이 가진 사과를 담아 봤다.

27일 오후 2시 서울 시민청 태평홀에서 서울시 문화예술과와 장애인문화예술판이 ‘꿈틔움 예술창작소 작품발표회’를 열었다. 이날 발표회장은 장애인 예술가들과 100여 명의 관객으로 붐볐다.

꿈틔움 예술창작소’는 서울시와 장애인문화예술판이 서울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29세 이하의 장애청년예술가 40여 명을 1:1로 매칭해 지난 5월부터 11월까지 총 25회의 만남을 가지며 다양한 예술 활동을 통해 진로를 모색하도록 도운 사업이다.

예술가들은 7개월 동안 장애청년들의 멘티가 되어 창작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왔다. 이날 발표회에서 멘티와 멘토들은 그동안의 이야기와 성과를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먼저 임준우 군이 색소폰으로 영화 알라딘 OST ‘Speechless’와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를 연주했다. 흥겨운 멜로디에 관객들은 힘찬 박수와 환호로 호응하며 현장의 분위기를 올렸다.

준우 군의 멘토를 맡았던 김대범 씨는 “준우 군은 밝음 그 자체였다.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감점 기복이 심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준우 군은 만나는 시간 내내 항상 밝게 웃고 본인의 감정 표현에 솔직했다”고 회고했다.

김 씨는 “준우는 음악적으로도 아주 뛰어난 청취 능력을 갖고 있다. 한 번 들은 음악을 그대로 따라 할 줄 안다”며 “청각장애가 있어서가 아니라 음악을 듣고 연주하는 것을 사랑하기에 필요한 능력을 스스로 터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소회를 밝혔다.
다음은 최서은 씨가 부모님이 데려와 키웠던 앵무새 ‘사랑이’와의 이야기를 담아 직접 만든 그림책 ‘사랑이와 나’를 낭독했다. 처음 사랑이를 만나 가슴이 뛰었던 이야기, 사랑이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냈던 이야기, 그리고 사랑이에게 병이 생겨 떠나보내야 했던 이야기, 빈 새장을 소중히 간직했던 이야기, 직장에서 겪고 돌아와 빈 새장을 바라보며 울었던 이야기들이 그림과 함께 생생히 담겨 있었다.

서은 씨가 그림책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운 멘토 박세영 씨는 “서은 님을 만나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서은 님이 ‘사랑이’의 이야기를 꺼냈다”며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하는 서은 님을 보고 있으니 샛노란 깃털에 주황색 볼터치를 한 왕관앵무새 한 마리가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는 사연을 전했다.

박 씨는 “서은 님이 함께 발맞추기에 세상은 너무 바쁘고 복잡하다. 지금도 서은 님은 실패를 겪고 상처받으며 살지만, 사랑이를 통해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고 한다. 혼자 느리고 천천히 가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꿈이다”라고 말했다.

그림책의 결말은 놀라웠다. 어느 날 서은 씨가 빈 새장을 보며 하염없이 울던 순간, 갑자기 사랑이가 ‘푸휘’ 하는 울음소리를 내며 빈 새장에서 걸어 나온다. 그리고 자꾸만 커지더니, 서은 씨를 등에 태우고 함께 살던 부산으로 날아간다. 사랑이는 사라진 게 아니라, 서은 씨의 마음속에서 소중한 꿈을 함께 키우고 있었다.
이어 김경민 씨의 ‘브륄레 브륄레’ 무용 공연이 이어졌다. 느리지만 아름답게, 서툴지만 열심히, 무대를 휘젓는 경민 씨의 몸짓이 관객들을 숨죽이게 했다.

경민 씨가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도운 안정우 씨는 “바라보면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수줍고도 예쁜 웃음을 보여준 경민 씨에게 멘토인 제가 매번 감사함을 느꼈다”며 “뇌병변장애인인 경민 씨가 활동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최대한 관절의 가동 범위를 넓히고 팔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유도해 결과물이 도출될 수 있도록 했다”고 술회했다.

물론 경민 씨의 움직임은 원활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민 씨의 꿈은 춤을 남들보다 잘 추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관객들은 끝까지 무대를 마치고 내려가는 경민 씨의 당당함에 박수를 보냈다.

이밖에도 공룡을 좋아해 고생물학자의 꿈을 가지고 있는 유승준 씨의 공룡 테마파크 모형, 트럭에 흥미가 있어 트럭을 위한 높이제한 표지판을 그리고 여기저기 붙이며 성취감을 느낀다는 최승완 씨의 사연까지, 지면에 모두 담을 수 없는 많은 장애청년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공연전시를 통해 관객들의 눈길을 모았다.

오후 4시가 넘어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려 발표회장을 나왔다. 다시 추위에 얼굴을 옷깃에 파묻고 걸으며 바삐 걷는 다른 이들을 돌아봤다. 그리고 저들에게도 사과가 있을 것이고, 누구에게나 사과가 있을 것이며, 그 사과가 주렁주렁 열릴 봄이 언젠가는 다가오리라는 희망을 품어 봤다.​

#출처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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